어학꼼지락/중국어

중국어 입문기

J.Pei 2018. 7. 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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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아이 둘과 한몸인듯 6년을 보내고 둘째까지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 후

그 홀가분함과 모호한 죄책감에 

발끝이 땅바닥에서 몇센치 뜬듯한 상태로 

처음엔 시간을 물쓰듯 흘려보냈던것 같다.

안식년이라며 실컷 늘어져지내기도 했다가

도서관에서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을 정기적으로 빌려오고 반납하고.

미니멀에 꽂혀서 묵은 짐들을 처분하는데 오랜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지역카페에 우연히

중국어 재능기부를 하겠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난 영어를 잘하고 싶은데 중국어?

일단 덧글을 달고 쪽지를 받아보니 

우리아파트 바로 옆에서 한다질 않은가. 

진짜 배워보라는 계시인가?

장롱면허인 까닭에 

내 행동반경은 아파트 바로옆에 있는 도서관까지가 다인 나인데

아. 진짜 한번 가봐?

첫 오티를 마치고 나오면서도 고민했다.

중국어가 진짜 배우고 싶은지.

역시 영어가 배우고 싶었다.(지독한 영어컴플렉스)

버스라도 한번 타면 영어스터디를 한다는 곳이 있었지만

뚜벅이에게는 지속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란 판단에 포기해버렸다.



그땐 뭔가 하고 싶었던것같다.

처음 한두달은 가면서도 고민은 계속되었고 

재미도 느낄수 없었다.

그놈의 성조가! 권설음이!!!

너무도 안되는거였다.

뭘시작해서 못한다는 소리는 안들어봤는데

이거 맘대로 안되는거다.

집에서 혼자서 연습도해봤지만

조금만 낯선게 나오면 왜 도로아미타불인지

아니 연습한것도 시키면 안되는 답답한 지경이니 

뭐이 재미있었겠는가.



그 모임에서 모두가 아줌마였고 

모두가 중국어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꽤 많은 분들이 배우기를 즐기고 

못하는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점이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좋게 말하면 완벽주의, 사실은 겁보.

내가 잘하지 못할것같은것은 재고재다가 결국은 시도하지 않는데

이번엔 뭔가 실수를 한것이다.



수업을 들은지 한달째 되었을까?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길에 같은 회원분에게 푸념하듯 얘길했다.

"중국어 너무 어렵지 않아요? 수업가기까지 항상 가지말까 고민해요."

그분은 나보다 더 안되는것같아보여서 나와 비슷한 심정일거라 기대했던것같다.

"그래요? 나는 재미있는데. 그냥 못해도 난 배우는게 재미있어요."

내가 얼마나 새로운것에 긴장하는지 여실히 느꼈던 그날의 기억은 

꽤 오랫동안 선명하게 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긴장하지 말자구!

'绕口令라오코우링'이라 불리는 입풀기 문장이다. 우리나라의 간장공장공장장...같은... 내가 이걸 발음할때 얼마나 좌절했었는지 모른다.ㅠㅠ





중국어 병음을 모아놓은 표인데 많이 읽고 문장속에서 자꾸 보다보면 굳이 외우지 않아도 읽을수 있게 된다던 선생님의 말이 맞았다. 老师,谢谢!



그후로 못해도 챙피해도 꾸준히 갔다. 

나는 별다른 스케줄이 없으니 아이가 아프지 않으면 계속 갔다.

안되는걸 되게하고자 혼자서 자주 읽어보기도하고.

그래도 참 나아지지 않는데 기가 찰 지경.ㅎ


모르는것이 너무 많다보니 한자한자 다 필기를 해야했었고, 중국어라는 생소한 문자에 필기조차 자신없어 초창기에는 연필만 사용했었다.



수업하는 중간에 이런이야기를 참 자주했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학생때 이런걸 배울땐 참 싫고 힘들었는데

지금 이렇게 아무도 등떠밀지 않는데

머리 다 굳어서 이렇게 배우겠다고 꾸준히 나오는게 신기한 일이라며.

무언가를 배우는데있어 시험이 없고 진도에 대한 강박이 없이

즐기면서 배울수 있어서가 아니겠느냐고.

그말을 하면서도 어린시절  시험에 등떠밀려 했던 공부가 힘들었던 기억에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할 공부가 얼마나 고달플지 미리 마음이 아프기도 했던 생각이 난다.




그때 시작한 중국어 수업은 3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이들 방학때는 수업을 한달씩 건너뛰기도하고

개인 사정때문에 자주 빠지게 되는 회원도 있다.

중간에 신입회원이 들어오기도해서 수업수준 설정도 애매한 상황에다

대부분 수업시간에만 교재를 열어보는 까닭에 실력도 어디가서 말하기 챙피함.ㅋㅋㅋ



지금 우리 중국어 모임은 수다타임이 더 길어서 

수업은 아예 시작도 못하고 수다떨다가 헤어질때가 있을만큼 서로가 돈독해졌고

우리가 이렇게 널럴하게 했기때문에 이렇게 오래 유지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수업에 좀더 집중했으면 하는 아쉬움 마음을 접고 최대한 즐기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수업으로 중국어 공부라는 취미를 얻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힘든 성조의 산을 일단 넘었고

간단하나마 작문도 해보고

무엇보다 이제는 중국어가 꽤 재미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뭔가를 계속 지속하는 내게 쌓이는 것도 반드시 있다는것을 확인하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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